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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13

이어가기 2013. 11. 2. 07:41

 

 

으엑, 우유병 대신 탄산음료를 ㅜ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서 있는 용산가족공원이었지

돌이켜보면 그추억의 가족 공간이 거의 사라지지 않았나 싶다

'관'자 돌림의 건축공간만이 예외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지. 우린

단지 이 찰나에 빛의 도움으로 과학의 힘을 빌어

그 또한 순간마다 진화하는 예술품을 잡아 놓은 게지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의 <돈의 철학>은 돈에 대한 비판, 화폐경제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돈에 기반하는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책이다. 길 제공

지멜의 독일어 원본 번역
주관적 욕망이 교환돼 객관화
질적 차이 사상한 예술을 닮아

돈의 철학
게오르크 지멜 지음, 김덕영 옮김
길·5만5000원

 

게오르크 지멜(1858~1918)의 <돈의 철학>(1900)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83년 영어를 거친 중역본을 통해서였다. 대학 앞 서점의 가판대에 놓여 있던 그 책의 영상이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책의 대본이 된 영어판 자체에 오역이 섞여 있었다고 한다. 첫 번역이 등장한 지 딱 30년 만에 드디어 독일어 원본의 번역이 출간됐다. 역자는 독일 카셀대학 사회학과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김덕영씨. 번역은 깔끔하고, 해제도 충실하다.

 

학부 시절에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워낙 오래전이라, 머리에 그때 했던 독서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그 후 지멜을 다시 접한 것은 유학 시절. 이른바 ‘지멜 르네상스’의 물결 속에 문화에 관한 몇몇 에세이들을 읽은 적이 있다. “미개인들은 원거리 지각은 예민하나 정작 제 몸에서 나는 악취는 맡지 못하는 반면, 문명인들은 원거리 지각의 능력은 떨어지나 근거리 지각에는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새 번역본 <돈의 철학>을 펼쳐 읽자마자 당장 떠오르는 두 이름이 있다. 바로 이마누엘 칸트와 카를 마르크스다. 책에서는 화폐의 물신성이나 노동의 소외와 같은, 마르크스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여러 주제들이 -아마도 칸트주의의 영향 아래- 새로운 색채로 변주된다. 칸트는 관념론자, 마르크스는 유물론자다. 이 둘의 길항관계에 주목하라. 서로 대립하는 이 두 시각은 때로는 서로 충돌하거나 보완하면서 화폐경제가 만들어낸 생활세계의 현상학을 전개한다.

 

사적 유물론은 경제적 토대를 강조한 결과 문화적 상부구조의 자율성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사적 유물론에 내재된 경제 결정론의 경향을 수정하는 데에는 역시 정신의 능동적, 구성적 역할을 강조하는 칸트의 철학이 제격이었을 게다. 당시 독일의 지성계는 마침 칸트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새로 부활하여 사회학의 지배적 경향이었던 콩트의 실증주의에 맞서던 참이었다.

 

돈의 본질을 ‘가치’의 문제로 접근하는 데에서 벌써 신칸트주의의 경향이 드러난다. 무게나 길이와 같은 속성은 대상의 객관적 속성이나, ‘가치’는 대상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역시 ‘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지멜의 가치론적(axiological) 접근은 그 성격이 신칸트주의적인 것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채택한 ‘노동가치설’과는 비교적 명확히 구별된다.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현실의 내용을 완전히 자율적인 질서에 담아내는 가치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가치의 세계란 무엇인가? 지멜은 쇼펜하우어를 패러프레이즈한다. “존재의 세계가 나의 표상이듯이, 가치의 세계는 나의 욕망이다.” 즉, 사실의 세계가 우리의 의식이 구성한 표상이듯이, 화폐경제는 우리의 욕망이 구성한 가치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렇듯 지멜의 가치론은 사적 유물론과는 사뭇 다른 세계관을 함축한다.

 

지멜의 사상적 고향인 슈트라스부르크에 있는 그의 묘지. 길 제공

 

노동가치설에서는 상품의 가치를 그것을 만드는 데에 투여된 사회적 평균노동량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가치’는 유사물리적 속성, 즉 상품이나 화폐 속에 응결된 땀방울로 간주된다. 반면, 지멜에게 가치는 욕망의 상관자다. 사람마다 다른 그 주관적 욕망은 ‘교환’을 통해 객관적 가치로 확립된다. 노동가치설이 ‘생산’의 관점에서 가치에 접근한다면, 지멜의 가치론은 그것을 ‘교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마르크스에게 인간이 ‘노동하는 동물’이라면, 지멜에게 인간은 ‘교환하는 동물’이다.

 

지멜은 이 두 가지 관점을 서로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본다. 자신의 작업이 “사적 유물론의 토대를 보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적 구조를 통해 이념적 구조를 해석하는 경우에 경제적 구조는 이념적 심층구조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는 관념론(칸트주의)과 유물론(마르크스주의)의 ‘종합’이라 하기보다는 차라리 슬라보이 지제크를 따라 ‘시차’라 불러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멜이 자신의 논의에 종종 미학을 동원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돈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안다. 그것은 교환되는 사물들의 질적 차이를 지우기 위해 등장했다. 시장의 그 어떤 물건도 교환되어 돈이 되고, 그렇게 얻은 돈은 그 어떤 물건과도 교환된다. 결국 돈은 사물들의 질적 차이를 사상한 순수한 형식인 셈이다. 그 점에서 그것은 예술을 닮았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은 순수한 형식(‘목적 없는 합목적성의 한갓된 형식’)이다.

 

지멜은 사물들이 교환을 통해 구체적인 질적 특성을 잃고 돈이라는 추상적 양으로 변하는 과정과 현대예술의 점증하는 형식화, 추상화 사이의 연관을 지적한다. 이것이 지멜 특유의 ‘사회학적 미학’이다. 시장에서 주관적 욕망들이 교환을 통해 객관적 가치로 확립되는 과정을 설명할 때, 그는 취미판단이 “주관적 보편성”을 띤다는 판단력 비판의 논의를 원용한다. 이렇게 ‘사회학적 미학’은 동시에 ‘미학적 사회학’이 된다.

 

이어서 지멜은 돈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를 자신의 형상대로 주조하는지 기술한다. 화폐경제는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 동시에 “무엇으로의 자유”다. 돈이 가져다준 자유는 추상적 자유, 내용 없는 자유의 한갓된 형식이기에 “우리 시대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확실히 더 많은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자유를 아주 조금밖에 향유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역시 구체적 문화 현상에 대한 분석들이다. 돈은 현대인을 모든 질적 감정들을 잃어버린 차가운 계산의 주체로 변화시킨다. 가령 수전노와 낭비벽은 실은 동일한 현상으로, 최종 목적인 소비 앞에서 정작 구체적 사물에 무관심해지는 두 가지 방식이다. 수전노는 아예 소비를 포기하고, 낭비자는 소비할 대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부벽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욕망은 대상을 향유하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돈을 쓰는 데에 있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지멜의 통찰은 오늘날의 문화를 분석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가령 ‘1000원 숍’의 물건들은 구체적 사용가치와 상관없이 그저 ‘동일한 양(가격)’으로 묶여 있다는 의미에서, 양이 질을 삼켜버린 화폐경제의 극한현상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지멜과 발터 베냐민의 관계다. 5장에 나오는 ‘실물가치의 화폐가치로의 전환’이라는 절은 훗날 베냐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제기할 유명한 개념, 즉 ‘아우라의 파괴’를 선취하고 있다. 지멜에 대한 때늦은 관심의 부활은 아마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새로 번역된 <돈의 철학>이 우리 사회에서도 또다른 지멜 르네상스를 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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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12

이어가기 2013. 10. 25. 18:30

 

 

힘이 장사다

D-day까지도 모두 그랬지

남자라고

 

아기는 총총한 별이 빛나는

우주 공간에서 언뜻 윤곽만 보이는

투명한 크리스털 상자안에 갇혀 있었지

 

아기는 스스로 상자의 안과 밖을 뒤집어

세상과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놓음으로써

전무후무한 역발상을 실현하였지

 

비록 그 순간도 우주 공간의 한 곳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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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11

이어가기 2013. 10. 21. 13:01

 

 

당대의 번역가이자 신화 저술가
고 이윤기의 산문 추려 모아
‘원문 뒤 숨은 푹 익은 우리말’ 등
번역과 문장에 대한 생각 가득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1만3800원

 

소설가로 시작했으나 곧 당대의 번역가가 되었고 이윽고 신화 저술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 고 이윤기(1947~2010·사진)의 이력은 이렇게 줄일 수 있을 테지만, 그것으로 족할까.

 

그의 벗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은 이렇게 쓴다. “이윤기가 있었다”고.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경상도 산골 마을의 언어가 있었다. 이 언어 천재는 그리스나 라틴의 고전어뿐만 아니라 첩보요원들이나 감옥의 죄수들이 쓰는 말까지도 제 고향 말과 만나 낯익은 울림을 얻을 때에만 그 언어를 진정한 언어로 여겼다”고.

 

이윤기는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가’란 상찬은 받지 못했을망정 ‘우리 시대의 문장가’라는 수식어가 버겁지 않은 글쟁이였다. 세 해 전에 급작스럽게 타계한 이윤기의 글에 대한 생각, 번역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글들이 한 권 책으로 묶여 나왔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생전에 발표된 산문 가운데서 ‘쓰고 옮기는 일’에 관한 글을 추렸다. 그가 걸어온 삶의 갈피가 스며 있어 재미도 나거니와, 읽다 보면 심히 드러나는 그의 문자 중독, 독서 편력에 새삼 ‘징그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첫 글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이윤기는 답한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라고 또 쓰고 싶지는 않다”고. 못 배겨서 쓴 글은 이상하게도 아무 울림도 지어내지 못했다면서도 “그런 글을 쓰고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는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문학을 하는 이유는? 그는 이렇게 에두른다. “문학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생이 그렇게 풀렸다.”

 

취학 전엔 한글 딱지본 소설을, 초등학생 때는 만화책을, 중학생 때는 학원사 학생문고를 읽으며 “아, 글이라는 게 세상을 이렇게 넓게 살도록 하는구나. 글 쪽으로 가파르게 기울었다”고 쓴다. 열다섯 살 늦깎이로 중학생이 되어 2학년 때 도서관 사서 노릇을 하면서는 “미당 서정주의 시집을 읽는데, 읽는 족족 암기하게 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쓰고도 그 다음 문장에선 “자랑이 아니다”고 넉살을 부린다. 남들 고등학교 다닐 때 독학해야 했던 그는 “혼자서 영어를 배워 헤밍웨이, 포크너를 읽었고, 일본어를 공부해 미시마 유키오,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

 

그는 ‘어찌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으면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답한다. 한데 이렇게 쉬운 걸 왜 여느 사람은 못할까?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튼다. 제 글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번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화학적 변화’를 주창한다. 물리적 변화만 일으키는 “그런 번역은 컴퓨터도 해낸”다. 번역은 “사전과의 싸움”이요, “살아 있는 표현을 찾는 일”이요, “원문의 배후에 숨어 있는, 푹 익은 우리말을 찾아내는 일”이다. 가령 ‘나싱 투 루즈’를 ‘더는 잃을 게 없다’고 옮기면? “나무랄 번역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색을 그만둬선 안 된다. 더는 잃을 것 없는 상황을 우리말로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하지 않는가. 반드시 그렇게 번역해야 한다고 하는 게 아니다. 적어도 거기까지 모색한 뒤에 그 말결에 걸맞은 말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문화의 힘 가운데 상당 부분은 번역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소설 쓰는 행위조차도 “문자 문화를 향한 현상의 번역 행위”로 여긴다. 그런데 그에게 번역가의 명성을 안겨준 <장미의 이름>은 “나를 행복하게 하고 비참하게 한 소설”이기도 했다. 잘못 번역한 대목들을 누군가의 지적을 받아 고쳐서 개정판을 냈던 일화를 들려주면서 “오독하고 오역한 것이 매우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책 제목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란 무엇일까. 그 자신이 ‘조르바에게 난폭한 입말을 돌려주기’란 글에서 사뭇 열기에 들뜬 어조로 쓰고 있기도 하지만, 그가 옮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이 그 물음에 답한다.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이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드리지. 자, 갑시다.”

 

‘읽고 쓰는 인간’인 ‘나’ 앞에서 ‘살아 버리는 인간’ 조르바의 춤은, 이윤기가 전하는 카잔차키스의 말을 옮기자면, “메토이소노”(거룩하게 되기)이다.

 

그는 1977년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한 뒤 번역의 길에 들어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해 200여권의 책을 옮겼고, 2000년대 들어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가 일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 독서계에 신화 붐을 일으켰다.

 

‘바닥을 기어본다는 것’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1991년 내 나이 마흔다섯 되던 해. 문득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 번역도 내게는 중요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그해에 그는 외국행을 택했다. 그곳에서 바닥부터 박박 기었고, 그 덕에 소설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그러곤 소설 <숨은그림찾기1-직선과 곡선>으로 1998년 동인문학상을, <두물머리>로 2000년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그것으로 성에 찼을까? 그는 문단의 주류는 아니었다. 생업으로 시작한 번역은, 물론 생업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긴 했을 터이지만, 그에게 ‘이 시대의 소설가’라는 수식어는 꼭 가닿고 싶은 밤하늘 별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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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2

이어가기 2013. 10. 19. 07:50

작년 이맘 때만 해도 주차장 입구부터 성지 전구간까지

 

세 번 정도 쉬면서 돌아보실 수 있었는데

 

 

보행기에 의지하시고도 100여 미터를 못 걸으셨다.

 

 

휠체어를 가져왔기에 앉아서 둘러보셨다.

 

두 탈것을 차에 싣고 내리고 왕복하다 보니 오른쪽 보청기가 가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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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10

이어가기 2013. 10. 16. 16:33

 

 

이사도라 덩컨?

강은미?

풋! 그냥 웃지요.

 

달빛자르기 기본자세닷!

 

무능한 아버지, 도플갱어 등
공통된 모티프 두드러져
순대·복숭아·카레 등 소재로
‘코스 요리’ 같은 단편집

여름의 맛
하성란 지음
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하성란의 소설집 <여름의 맛>에는 단편 열 작품이 묶였는데, 그중 셋이 주요 문학상 수상작이다. 2008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알파의 시간>과 같은 해 오영수문학상 수상작 <그 여름의 수사>,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카레 온 더 보더>가 그것들이다. 그가 한국 문학의 단편 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수상작들을 포함해 이번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는 몇가지 공통된 모티프가 두드러진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가장의 존재가 우선 눈에 뜨인다. <알파의 시간>과 <그 여름의 수사> <1968년의 만우절>이 대표적이고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 역시 어느 정도는 같은 계열이라 할 만하다.

 

<알파의 시간>에서는 멀쩡한 교직을 그만두고 사업을 한답시고 실속 없이 전국을 떠도는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시장통 순대골목에서 음식 장사에 나선다. 딸의 시점을 택한 소설은 그 시절로부터 20년 뒤, 치매 환자가 된 채 침대 신세를 지고 있는 엄마가 내뱉은 의문의 한마디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쉬었다 가세요…” 순대골목 여자들이 손님을 끄느라 외치곤 했던 이 말이 생의 마지막 시기를 지나고 있는 엄마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나.

 

딸의 회상은 그 시절 족발을 조리면서 유행가를 흥얼거리던 엄마를 되살려낸다. 그리고 순대골목 여자들에게 얼음을 대주던 사내(“기껏해야 얼음을 ‘어름’으로 아는”)와 엄마 사이에 있었을 모종의 사연, 그로 인해 “여자들에게 뭇매를 맞”던 엄마의 모습으로 회상은 이어진다. 그 회상의 끝에 화자 ‘나’가 도달하는 결론은 이런 것이다.

 

“그해 봄에서 여름까지의 5개월이 우리에게는 ‘발 하나 없는 돼지의 공포’였지만 엄마에게는 붉고 푸르던 고명의 시절이 아니었을까, 아직까지 나는 머리로만 이해할 뿐이다.”

 

<그 여름의 수사>에는 서울의 교직을 그만두고 지방 소도시에서 가게를 한다고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화자인 열한살짜리 여자아이 ‘나’는 필요한 용건이 있을 때마다 엄마를 대신해 아버지에게 전보를 친다. 기본 요금을 넘지 않기 위해 하고픈 말을 열 자 안에 우겨넣는 ‘수사’(修辭)가 ‘나’의 몫이다. 섬에 사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에도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아버지를 찾아 식구들이 소도시의 문 닫은 옷가게로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혼자서 곤로에 하지감자를 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버지가 바라던 삶은 뽀얀 하지감자를 삶을 때의 고요함인지도 모른다.”

 

<1968년의 만우절>에는 무능한 가장이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등장한다. 크고 작은 거짓말로 평생을 버텨 온 아버지는 이제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병원 침대 신세를 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화자 ‘나’의 남편은 팔리지 않는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해째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는 중이다. 장인의 임종 소식보다는 제 시나리오가 망한 게 더 가슴 아파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퍼부으며 우는 남편을 보며 화자는 생각한다. “내 앞의 이 낯선 남자는 누구일까.” 그 남편과는 결국 이혼하지만, 화자는 “아버지가 했던 거짓말 중의 최대 거짓말”인 “1968년 만우절의 거짓말” 덕분에 자신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은 안다.

 

<두 여자 이야기>와 <순천엔 왜 간 걸까, 그녀는>에는 나란히 도플갱어 모티프가 나온다. <두 여자 이야기>에서 80년 5월 광주로 짐작되는 “그 일”에 관한 연민과 죄책감, 그리고 <순천엔…>에서 납치 및 인신매매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전달하는 데에 이 모티프는 효과적으로 쓰인다. 표제작의 복숭아와 <카레 온 더 보더>의 카레, <돼지는 말할 것도 없고>의 삼겹살처럼 음식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유머 코드가 책 곳곳에 박혀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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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9

이어가기 2013. 10. 14. 12:46

 

 

6개월 째였나? 외가댁에 놀러가서 개울가에 앉았지. 물론 아가는 엎어져 있었고. 몸을 뒤적일 수 있었을 때였으니. 문득 모래를 만지는 거야.

 

'아, 그래. 아가가 처음 만지는 자연 속의 사물이겠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흙에 기생하는 기생충이 떠올랐지.

 

찌찌, 하면서 손을 털어주었지. 아가는 처음 접하는 그 촉감을 음미하는 듯 했어. 그러다 내가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갑자기 모래를 한 움큼 집더니 막 주물르는 거야!

 

으아아아아아아앜 ~~~ ㅎ 

 

과학자의 관찰 노트
마이클 캔필드 엮음, 김병순 옮김
휴먼사이언스·2만4000원

 

지난달 덕유산 향적봉 식물탐사 때였다. 구절초, 산오이풀, 용담…. 가을 야생화를 보자 모두 디지털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바빴지만 한 대학생은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리기 시작했다. 식물의 특징적 부분은 따로 그리고 여백엔 설명을 넣었다. 하산길에서 확인됐지만, 간편하고 빠르게 사진을 찍은 이들보다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대학생이 식물을 훨씬 자세하고 깊이 있게 기억했다.

 

자연사학자이든 자연애호가이든 자연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요즘은 디지털 기기가 대세이지만 다윈 이전부터 자연사 연구자가 기록하는 오랜 전통은 ‘종이와 연필’을 쓰는 것이다. 동물이나 식물, 화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관찰 노트를 작성한다.

 

이 책은 세계적인 자연사 연구자 12명의 관찰 노트를 소개한다. 그들이 어떻게 기록하고 연구에 활용하는지를 들려준다.

 

기록은 자연 연구자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조지 샬러는 1980년 당시 보전의 중요성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대왕판다를 며칠씩 따라다니며 똥덩어리의 수와 크기, 무게, 성분을 기록했다. 하루에 97개의 똥을 누고 대나무가 대부분인 그 무게가 20㎏이 넘는 것을 밝혔다. 판다 서식지 보호에 나설 기초자료가 이렇게 쌓여 갔다. 관찰 노트를 작성하는 건 단지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을 얻는다. 현장에서 관찰한 것을 나중에 옮겨 적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새로운 통찰이 나오기도 한다.

 

‘달리는 과학자’로 유명한 베른트 하인리히는 길바닥에 떨어진 나무 잎사귀에는 유독 벌레 먹은 게 많다는 메모를 해 두었는데, 나중에 벌레의 천적인 새들이 벌레 먹은 흔적으로 먹이를 찾기 때문에 이를 감추기 위해 벌레가 먹던 잎을 떨어뜨린다는 발견으로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또 그림 솜씨와 무관하게 관찰 노트에 그림을 넣으라고 강력하게 충고한다. 그림은 사진과 달리 눈과 함께 머리로 그리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표현한다. 유명한 식물도감과 조류도감이 그림으로 돼 있는 것도 특징을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데는

그림이 사진보다 윗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이자 동물학자인 조너선 킹던은 “연필은 … 보이지 않는, 문제가 되는 조직을 찾으려고 애쓰는 외과 의사의 절개용 메스와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실용서가 아니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 현장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의 탐구 과정과 그들의 ‘종이와 연필’ 사랑을 엿보게 해 주는 책이다. 오죽하면 사회생물학의 거장 에드워드 윌슨은 자신에게 천국은 탐사할 자연과 “끝없이 쓸 수 있는 노트”가 있는 곳이라고 했을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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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가기 2013. 10. 10. 09:34

 

 

전성은의 ‘사랑에 눈뜸’ 교육론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
전성은 지음
메디치·1만4000원

 

“내 교육은 실패했어.”

 

36년 전 아버지가 던진 이 한마디로 아들은 평생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안고 살았다. <왜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가>의 지은이 전성은씨는 국내 첫 혁신학교 거창고를 만든 전영창 선생의 아들이다. 폐교 위기에 놓인 산골의 거창고를 인수해 전인교육의 대명사로 일군 전영창 선생의 삶은 그야말로 한 편의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물려받은 지은이는 지난 41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이 책에서 그는 평생 천착한 교육의 근본에 대해 살피고 현 시대가 봉착한 교육의 위기를 짚는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하는 사람을 길러 내는 것, 자아 실현을 돕는 것, 기술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런 것은 교육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가 입시 기관으로 전락한 작금의 현실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는 단연코 “사랑에 눈뜸이 교육”이라 말한다. 사랑에 눈뜬 자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불의나 부패와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가족을 넘어 시대 모순과 마주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의 교육은 대한의 독립이었고, 군부 정권 시대의 교육은 민주주의였다.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일정 부분 진전된 현 시대에서 교육이란?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지엽적 교육이 아닌 본질적 교육을 스스로 실천하는 그의 삶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여기에 행복을 추가하고 싶다.

행복이 없는 평등과 평화는 위선이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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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가기 2013. 10. 9. 09:13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열화당·1만원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한 부분을 친구가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밤에 작별 선물로 읽어 주었다. 글 속에서 존 버거는 로스티아란 친구를 만난다. 로스티아는 이제 막 군복무를 마치고 갓 제대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어떤 군대에도 가보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긴 투쟁 자체가 그에겐 말하자면 끝없는 기동훈련만 같았던 것이다. 삶이 군대 생활 같다 보니 그의 꿈은 휴가를 얻는 것이었다. 휴가를 얻으면 뭐 할 건데? 미친듯이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로스티아는 세월이 흘러서 건축 사무실에서 시간제로 도면 그리는 일을 얻게 되었고 스튜디오를 마련해서 존 버거를 초대했다. 로스티아는 늘 전깃줄에 매달려 있는 전구와 전구갓을 그렸다. 그림마다 저마다 다른 광대한 풍경들이 전등 불빛 아래 드러나 있었다. “지표면 어딘가를 한 개 두 개 혹은 네 개의 전구가 한 가족처럼 비추고 있는 그림들”이었다. 볼수록 훌륭한 그림이었지만 존 버거는 어두운 생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비평가라는 말을 듣고는 있지만 그 그림들을 팔리게 만들 재능이 전무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졌던 것이다. 그때 로스티아가 불쑥 말한다. “왜 그래요?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요?”

 

질문이 아무리 천진해도 존 버거는 괴로운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저 멋진 그림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인정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둘은 물감을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 쓰면 얼마나 싸게 먹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름 냄새를 맡고 나니 좌절감이 잊혀지기 시작했다.

 

“다시 열두살 때로 돌아가 있었다. 처음으로 유화물감 한 상자와 연습장만 한 팔레트를 가지게 되었던 때였다. 물감이 담긴 튜브들은 먼 나라에서 온 꿈같은 이름을 달고 있었다. 인디언 레드, 나폴리 옐로, 원색 시에나. 그리고 눈보라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연상시키던 그 신비한 이름의 플레이크 화이트. 기름 냄새는 나를 반세기 전의 약속으로 되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또 그릴 것, 한평생 매일 그릴 것, 죽을 때까지 다른 것은 말고 그림만 생각할 것이라던.”

 

시끄러운 맥도널드에 앉아서 친구를 위해서 이 부분을 읽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바로 “한평생 매일 그릴 것” 같은 화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읽은 셈이었다. 우리는 수단과 목적으로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조차도 자신의 결핍을 메우려고, 기껏해야 자존감이나 경쟁력을 높이려고 수단시하는 우를 범한다. 그렇지만 기름 냄새가 존 버거에게 그림을 파는 걱정에서 벗어나게 해준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도 덩달아 깨끗한 종이 냄새로 돌아가게 되고 코를 벌름거리게 되고 내가 책읽기를 좋아했던 사람임을 기쁘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원래 너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잖아. 그걸로 충분했잖아. 원래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잖아. 그걸로 충분하잖아. 우리는 그걸로 뭘 하려는 이유도 없이 그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했잖아. 친구는 지금쯤 비행기 안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별빛과 달빛을, 창 안에 독서등을 켜놓고 책을 읽는 이름 모를 승객을. 이 생각을 하며 나는 또 다시 책장을 펼치는 것이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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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가기 2013. 10. 7. 08:17

 

 

미국에서 제일 가난하고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뉴저지주 캠던의 뒷골목 풍경이다. 이 지역은 주민의 9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 제공

인간이든 자연이든 쓰고 버린다
기자와 만화가가 2년간 전국 돌며
무너진 하층민 생존 현장 기록
“저항 행동만이 변혁 싹 틔울 것”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크리스 헤지스·조 사코 지음
한상연 옮김/씨앗을 뿌리는 사람·2만원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한때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미국만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일종의 ‘믿음’과도 같은 말이었다. 물론 그 믿음이, 비록 일부지만 실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도 이젠 버틸 재간이 없다. 거대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횡행하며 미국이 거대한 수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나라, 미국(美國)은 더 이상 그 어떤 꿈도 실현시켜주지 않는다.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는 절대다수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미국의 기업 자본주의를, 처절히 파괴된 하층민들의 생존 현장을 통해 고발하는 책이다. 책 서두에서 지은이는 ‘미국의 실상’을 고스란히 까발린다. 최고 수준의 빈곤율과 최고 격차의 소득 불평등 등 ‘최고’가 있는가 하면 어린이 행복지수와 사회적 약자 지원 예산, 평균 유급휴가 일수 등은 ‘최저’다. 눈을 의심하게 하는 ‘참상’도 여럿 있다. 세계 최고의 유아 사망률,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 소외 비율, 최저 수준의 중고등학생 수학 성취도 등이 그것이다. 원인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을 이용하고 폐기해 버리는 고삐 풀린 시장경제, 즉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 때문이다. 특히 기업 자본주의는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흑인을 도심의 내부 식민지에 가두었고, 황폐한 탄전에 내팽개쳤으며, 생산 현장에서 농노처럼 살아가게 만들었다.

 

세계의 테러리즘 취재팀 일원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지은이 크리스 헤지스와 코믹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이 책의 만화를 그린 조 사코는 2년 동안 철저히 발로 뛰어 미국의 ..... [원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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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5

이어가기 2013. 10. 5. 07:14

 

 

 

이 세상에서 제일 황홀한 모습은 아가의 함박웃음

우주 모든 물질계에서 최고의 촉감은 아가의 볼

 

아, 근데 네 표정은 이 두 가지 학설을 뒤엎었지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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