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요?"
"여수중앙시장!"
"거긴 안 가는데요."
거 참 이상하다. 사랑나무를 보러 성흥산성에 가려면 중앙시장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지도에서 찾아보니 거리가 모텔에서 1km 조금 넘는다. 산성 산행을 생각해 힘 좀 비축하자고
버스를 타려는데 방향은 맞는데도 시장으로 가는 버스가 하나도 없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잠시 생각.
내가 지금 뭐라고 말했지?
'부여중앙시장' 아닌가?
아흐.... 이건 다 우리 0이 탓이얐.
에라이, 비축은 뭐 가진 것 있다고 비축이냐.
걸어라, 넉넉잡아 20분이다.
시장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규모가 있어서
두 할머니가 운영하는 뷔페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했어.
버스정류장에서 운행노선을 훑어보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묻는다.
"어디 갈라고?"
목적지를 말하니
"아, 젊은얘들 잔뜩 자전거 타고 놀러오는 디?"
"응, 거기 티비도 나오고 찰영도 하고 그런데."
또 한 할머니가 끼어들면서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거긴 '임천' 가는 거 암꺼나 타면 돼."
"신촌이요?"
"임천!"
"김천?"
"임천!!!!"
(둘이서 똑같이 속으로) "Ah, C8."
젊은이가 참 현명하다.
공손히 휴대폰을 건내면서 사진을 찍어달란다.
자기 말고 나무를.
이런 사람 처음 봤어.
내 얼굴의 주름살과 흰머리가 신뢰를 주지 않았을까,
잠시 착각하는 아전인수의 파란 하늘.
여튼 헤맴은 좋은 사진 재료의 전제조건이야.
차도에는 이런 바위 저런 바위 등 다양한 이정표가 발걸음을 유혹하는데
그 중 하나를 택해 옆길로 새 보기로 했어.
근데 대부분 그렇듯 빌어먹게 이정표만 있고 길이 없는 거 있지.
그때 가끔 그렇듯 대나무숲이라는 숨겨진 보물을 찾았다.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마을에 내려와서
맑은 하늘과 풍요로운 들녁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전동휠체어를 타고 올라오는 할머니를 만났지.
동네 마실일 게 분명한데 말끔하게 옷 차려 입으신 거 봐라.
산행 초입의 정거장 위치를 묻는 것으로 말문을 여니
할머니 가슴에 쌓인 무슨 둑이라도 뚫린 듯 말씀이 끝나지가 않는다.
굳이 싫다시는 거 바구니에 담은 산딸기나무 찍는다는 핑계로 같이 담았다.
간신히 말허리를 자르고 작별인사를 드리니
방금 주워온 무공해 과일을 작별선물로 건네주시면서
"길 건너지 말고 타야 돼."
'슬렁슬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 Jarasom Jazz Festival (0) | 2022.10.04 |
---|---|
Left & Left (0) | 2022.10.03 |
Talk to Myself (0) | 2022.09.22 |
An Old Son and His Mom (0) | 2022.09.12 |
성묘 (0) | 2022.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