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온 세상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부스럭대고 있어요.

해바라기, 배따라기, 호루라기, 지푸라기,

찌르레기, 해오라기, 가시고기, 실오라기,

이것들을 어떻게 가지런히 정렬시키고, 어디다 넣어둘까요?

배추, 고추, 상추, 부추, 후추, 대추, 어느 곳에 다 보관할까요?

개구리, 가오리, 메아리, 미나리

휴우, 감사합니다, 너무 많아 죽을 지경이네요.

오소리, 잠자리, 개나리, 도토리,

돗자리, 고사리, 송사리, 너구리를 넣어둘 항아리는 어디에 있나요?

노루와 머루, 가루와 벼루를 넣어둘 자루는 어디에 있나요?

기러기, 물고기, 산딸기, 갈매기, 뻐꾸기는 어떤 보자기로 싸놓을까요?

하늬바람, 산들바람, 돌개바람, 높새바람은 어디쯤 담아둘까요?

얼룩빼기 황소와 얼룩말은 어디로 데려갈까요?

이런 이산화물들은 값지고, 진귀한 법.

아, 게다가 다시마와 고구마도 있군요!

이것들은 모두 밤하늘의 별처럼 그 값이 어마어마하겠지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이 모든 노력과 수고가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니 과분하기 그지없네요.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만일의 경우, 1972>에서


'이어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J-52: 포지션  (0) 2019.03.04
Y-73: 엊그제 같잖아요  (0) 2019.01.19
J-51: 무소의 뿔  (0) 2018.12.27
W-37: 한글날  (0) 2018.10.09
Y-71: 개천절  (0) 2018.10.03
Posted by 바람의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