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찾으려 해도 눈썰미 없이는 찾기 힘든 고택이었다. 우산들이 모여 있어서 '뭔 구경거리인가?' 다가가서 서촌 문화해설자의 설명을 들었다. 1910년대 친일파 윤덕영(1873-1940)의 첩이 살았던 집이라고.

 

 

필요에 따라 대충 지은 시멘트 창고의 벽에는 쌓아놓았던 연탄 자국이 선명하다. 그러나 가려진 한옥은 짙은 갈색의 격자무늬 창살이나 섬세하게 깎아 만든 장식, 마름모와 사각형 모양으로 쌓은 돌담 등 확실히 주변 건축물들과 구분이 된다.

 

  

 

계단을 올라가 우측에서 맞닥트린 풍경.

건물과 건물 사이로 고양이나 간신히 오갈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순정효황후(순종의 황후)의 큰아버지였던 윤덕영은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며 이 혼옥을 포함해 옥인동 47번지 일대 대부분의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7가구가 이 한옥을 나눠 소유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설계) 교수는 "친일파가 살았던 집이란 단점이 있지만, 평면도 독특하고 민가에서 보기 어려운 의장이 빼어나 희소성이 있는 건물"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신문 기사중>

 

 

이 한옥은 중구 필동의 남산골한옥마을에서 복제본으로 재탄생하였으나 '원본'의 감동이 없다고 윤성원 기자는 전한다. 이곳으로 안내하는 골목길 초입에는 이완용의 집터도 있는데, 문화해설사의 말을 빌면 '이 골목 입구에서 쩌~~~어기 끝까지가 다 그 사람 집'이었다고.

 

 

 

 

윤씨 가옥의 실측 입면도.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규모의 한옥을 향해 오르는 돌계단과 돌장식이 인상적이다. 계단을 오르며 바라보는 사랑채의 입면부가 당당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구가도시건축 제공

 

 

 

 

윤씨 가옥의 실측 지붕도.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는 “한옥은 ‘ㄷ’자의 안채와 바깥채가 마주해 전체로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내부는 여러 공간을 나눠 점유하며 변형과 증축을 반복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구가도시건축 제공.

 

 

효자동에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배경이 되었던 '효자동 이발소 '와 '형제 이발관'이 나름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효자동 이발소는 하늘 모르고 올라가는 월세를 견디지 못하고 근처 사우나탕으로 이사를 가고 이제 '형제 이발관'만 남았다. 터만 60년이 되었고 지금의 이발사도 경력 25년이라는. 효자베이커리는 맛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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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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