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는 어떻게 바깥에만 나갔다 오면 욕이 하나씩 늘어.


엄마가 자랑 반 한탄 반으로 늘어놓으시던 레퍼토리

그래서 그랬는지 밖에는 아예 나가지를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집안에 딱히 놀거리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기관총처럼 생긴 당시 내 한 팔 길이의

쇠로 만든 빗장을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열고 나가곤 했다.



비가 오신 직후, 초겨울 어느 날에도 그렇게 나갔다

골목을 벗어나 독공장을 왼쪽에 놓고 신작로를 타고 100미터쯤 가다

중앙국민학교 앞 구멍가게를 타고 다시 왼쪽으로 돌아가면 나타나는

만화가게의 유리문에 진열된 만화책 표지 디스플레이를 일별하고

또 다시 왼쪽으로 꺾어 무슨 한의원을 지나 첫 사거리로 가면

왼쪽에 만화방이 하나 더 있는데 그곳에서 다시 비슷한 디스플레이를 감상하고

10여 미터를 내려와 다시 왼쪽으로 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는 게

극소수의 루틴한 혼자만의 문화산책 일정이다.



가끔 있었던 현상으로, 그날은 대문이 닫혀 있었다

아마 문 열어달라고 엄마를 불렀을 것이나 기척이 없다

어린 마음에도 이건 체벌임을 알아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근처에 떨어져 있던 아이스께끼 나무 막대를 집어

지나가던 지렁이를 불러 데리고 놀면서 버티기 모드로 들어가 있는데

한 아저씨가 갑자기 골목으로 뛰어들더니

숨을 헐떡이면 양갈보가 산다는 대추나무집 쪽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고개를 떨구고 다시 흙 위의 지렁이가

내가 구축한 흙벽 너머로 못 나가게 막고 있는데



또 한 아저씨가 후다닥 나타나서 나를 내려다보며

‘지금 사람 하나 지나갔지?’ 물었다

‘응.’ 하고 대답하니, 어디로 갔냐고 다그친다

올려다보니 그의 콧구멍이 무섭게 벌렁이고 있었다.

왼손으로 첫 번째 아저씨가 뛰어간 곳을 가리키기가 무섭게

그는 대추나무집 쪽으로 뛰어서 사라졌다.

둘 다 처음 접하는 산도둑놈들 같은 몸짓과 태도였지만

두 번째 아저씨의 달리기 속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새 지렁이는 성벽을 넘고 있었다.

당시에도 지렁이에 대한 지식은 상당했다.

주로 비가 오신 후에 혼자 나타나 싸돌아다닌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소금을 뿌리면 광란의 춤을 춘다는 사실은 직접 실험해 보기도 했고

녀석을 손으로 만졌다면 절대 그 손을 이용해

오줌 싸면 안 된다는 위생관념도 갖고 있었다.

어디선가, 만약 그러면

내 거시기가 굉장히 붓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쫓아갔던 아저씨가 다시 나타나더니 내 앞에 딱 선다

“어린 새끼가 벌써부터 거짓말 하냐, 이 ㅆㅂ놈의 새끼야!”

그는 사정없이 구둣발로 왼쪽 무릎을 걷어찼다.

뒤에서 대문이 버텨주지 않았다면 아마 난 날아갔겠지

그나마 한 대만 때렸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눈물이 났었겠지.

어머님 말씀 안 듣고 몰래 산책한 벌칙이 그렇게 시행된 것이지.

그렇게 욕을 배웠다.


집에서는 제일 시커먼데 밖에 나가면 또 제일 하얗다던

그 어린아이를 힘차게 걷어찼던 아저씨는 

대한민국 제2공화국 시절에 골목길로 도망쳤던 아저씨는

다들 어떻게 됐을까?




炭川

우리말로는 물색깔이 숯색깔이라는 숯내

경기도 용인의 석성산에서 발원하여 

송파구와 강남구를 거쳐 한강으로 유입되는 총연장 36.5 km의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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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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