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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4

이어가기 2013. 10. 3. 17:34

 

 

혼자서도 잘 해요

집안의 기쁨이었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로써 선물이었지

 

20여년이 흘러 이제

기저귀와 자리보전의

바통타치가 이루어지니

그것도 또 선물이겠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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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3

이어가기 2013. 9. 30. 06:59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이루·1만8000원

 

여자들이여, 내 안의 늑대와 함께 달리자! 이 책의 요지다. 늑대란 족속은 한국에선 남성의 표상처럼 소비되지만, 이 책은 늑대의 속성이 여성의 본성과 그 원형에서 맞닿아 있다면서 그 늑대를 되살리자고 말한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정통’ 여성학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는 ‘여성 심리학’의 고전이랄까, 대중적인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1992년 초판 발간 뒤 미국에서만 200만부 넘게 팔렸고 세계 18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다. 기실 한국어판도 1994년 출간됐으나 이듬해 출판사(고려원)가 부도나면서 절판되어 헌책방에서만 어렵사리 구할 수 있던 책이었다. 당시 옮긴이인 손영미 교수가 번역을 가다듬어 20년 만에 한국 독자를 다시 만나게 됐다.

 

영어의 여성(woman)은 그 어원이 ‘늑대(woe)+맨(man)’에 있다고 한다. 지은이 클라리사 에스테스(68)는 미국 덴버에서 카를 융 센터 소장을 지냈고 40년 남짓을 외상 후 심리 치료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이 책은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하여 신화와 옛이야기의 원형을 분석하고 그 이야기를 통한 심리 치유를 시도한다. 그렇기에 에스테스는 자신을 “심리학자 겸 이야기꾼”이라고 소개한다.

 

에스테스는 타고난 ‘야성’(wild essence)과 직면할 것을 여자들에게 요구한다. 그 직면을 통해서 야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야성의 여성성을 ‘여걸’(wild woman)이라 일컫는다. 여걸이란 말 그대로는 ‘길들여지지 않은 여성’, 곧 내 안의 늑대인 셈이다. 에스테스는 여걸의 원형에는 최초의 모계적 생활방식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가 신화와 옛이야기, 동화에 주목하는 까닭도 그 이야기들이 원시 상태의 자연이 남긴 것을 통찰할 수 있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에서 그는 ‘푸른 수염’, ‘미운 오리 새끼’를 비롯하여 미국 원주민, 중남미, 동유럽, 이누이트, 고대 그리스 설화들에서 인류 이야기의 원형을 끄집어낸다.

 

그 대표적 예가 ‘바살리사 이야기’다. 러시아, 폴란드를 아우르는 발트해 전역에 퍼져 있는 이 설화는 그 원형의 기원이 최소한 고대 그리스 문명 이전에 존재했던 말(馬)의 여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바살리사라는 여자아이가 상냥하고 따뜻했던 엄마를 잃는다. 엄마는 죽으면서 바살리사와 꼭 닮은 인형을 건네준다. 아버지는 재혼하고 계모와 두 의붓언니의 계략에 빠진 바살리사는 무서운 숲속의 마귀할멈 바바야가를 찾아가 불씨를 얻어와야 한다. 바살리사는 엄마가 남겨준 인형, 곧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인형을 품고 바바야가의 집을 찾아가고, 그 마녀의 시험(시련)을 통과(극복)하여 결국 불씨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못된 계모와 언니들을 죽이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바살리사가 벌벌 떨며 “불씨를 달라”고 말하자, 바바야가는 무서운 얼굴로 묻는다. “그런데 왜 내가 불을 줘야 하지?” 이에 바살리사는 내면 속 인형과 상의한 끝에 이렇게 답한다. “그건, 제가 달라고 하니까요.”

 

그러자 바바야가는 “흠, 그게 바로 정답이다”라면서 불씨를 건네준다. 바바야가가 무서운 존재인 것은 생명의 상징인 동시에 죽음의 상징인 탓이다. 그의 특징은 너무나 위협적이지만 지극히 정당하다는 점. 바살리사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한, 결코 바살리사를 해치지 않는다.

 

그림 이루 제공

 

이 설화는 친절하기만 했던 어머니와 결별하고 숲속의 여걸 바바야가를 만나 자신 속의 여걸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무서운 여걸을 담대하게 마주하는 것이 소녀에게 주어진 첫 과제였다면, 여걸과 친숙해지고 그 야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약간은 동화될 필요가 있다고 에스테스는 말한다. 못된 역할인 계모나 두 언니 역시 자기 내면의 한 본성이다.

 

그는 많은 여성이 낮에는 자기 감정이나 상대의 태도와 무관하게 지나치게 상냥하게 미소지으면서도 밤이 되면 짐승처럼 이를 간다면서, 이는 내면의 바바야가가 표출되지 못하고 억눌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바살리사 같은 상황에 처한 여성은 대개 남의 뜻에 고분고분 따르려는 충동을 느낀다. 그런데 자기 뜻대로 하면 그들에게 버림받을 것이고, 남의 뜻에 따르면 자기에게서 버림받는다. 지혜가 요구될 때 외려 착한 소녀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억압적 환경에서 착하게만 행동하면 돌아오는 것은 더 많은 학대와 부당함뿐이라고 에스테스는 말한다. 과잉보호의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숲속 무서운 마귀할멈을 만나라. 내 안의 마귀할멈, 곧 직관과 직면할 때 ‘될 대로 되라’던 내 태도는 ‘진상을 모두 밝혀 보자’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이야기에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믿지만 남성과 여성을 역사적으로 비교·고찰하는 책은 아니다. 심리학과 이야기에 젖줄을 댄 자기계발서에 가깝다. 옮긴이가 짚었듯이 정치·사회적 변혁보다는 개인의 노력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과도한 심리학 중심주의의 함정도 품고 있다. 그런데 내면의 늑대에게 귀 기울이라는 에스테스의 속삭임을 듣노라면 그 말에 쏙 빠져 고개를 주억대게 된다. 착한 어머니를 극복하고 야성의 마녀 바바야가를 받아들였던 바살리사처럼 말이다. 이 마법은 인류가 오래도록 의지해온 이야기의 힘에 근거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그림 이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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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어가기 2013. 9. 28. 19:05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부모 / 김소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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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2

이어가기 2013. 9. 26. 07:50

 

시로 읽자, 우리 역사
강영준 지음
창비·1만4000원

“일본에서 수입된 휴대용 버너에/ 미국에서 수입된 쇠고기를 구워/ 중국에서 수입된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씹는 동안/ 동남아인 노동자들은 제각각 다른 공장에서/ 일본으로 수출되는 건어물 포장하는 자신을 잊고/ 미국으로 수출되는 과일 통조림 만드는 자신을 잊고/ 중국으로 수출되는 과자 굽는 자신을 잊었다”(<야외 공동 식사> 부분)

하종오 시인의 <야외 공동 식사>의 배경은 이주노동자들의 체육대회다. 2007년에 펴낸 시집 <국경 없는 공장>에 실린 시다.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들이 형성한 거대한 이주의 흐름, 그 속에 한국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시는 정확히 짚고 있다. <시로 읽자, 우리 역사>를 쓴 강영준씨는 19편의 시를 들고 와 시대를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그의 어투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듯 친절하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대가 읽히는 시’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의 시들이었다. 이 책의 1부에도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육사의 <광야> 같은 명시들이 등장한다. 거기에 분단과 독재에 저항한 시를 다룬 2부와 민주화 운동과 통일 염원, 청년 실업과 다문화 사회의 내용이 담긴 현대시를 다룬 3부가 이어진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

분노와 자책이 섞여 있는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1965년에 발표됐다. 때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언론을 탄압하고 한국의 젊은이들을 베트남 전쟁에 파병할 때다. 책은 “5·16 군사정변 이후 한동안 숨죽여 지내던 김수영의 자기반성인 이 시는 당시 지식인들과 작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설명한다.

시를 시대의 틀에 맞춰 해석 중심으로 서술한 책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은이 역시 그 점을 경계한다. 서문에 ‘책을 읽을 때 주의할 점’을 밝힌 까닭이다. “역사와 문학을 연결하는 이 책의 의도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문학 작품을 역사적으로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 책에 소개된 이해와 감상은 어디까지나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중학 1학년부터.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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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1

이어가기 2013. 9. 24. 07:42

 

조물주의 선물

 

포기하는 용기 표1 copy.jpg 
포기하는 용기
이승욱 지음/쌤앤파커스·1만4000원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 이혼하고 싶어도 아이 때문에 이혼 못한다는 여자,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룸살롱에서 접대도 하고 거기서 만난 여자랑 잠도 잔다는 남자, 부모님이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는 공무원이 꿈이라는 아이들…. 과연 이들은 제대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포기하는 용기>의 지은이 이승욱 공공상담소 소장(영남대 심리학과 겸임 교수)은 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 속에 들어있는 감춰진 불안과 욕망을 끄집어낸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고, 타인과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부질없는 행동들을 하는지 보여준다. 

 아이 때문에 이혼 못한다는 사람은 사실은 아이가 없어도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 이혼을 선택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혼 뒤의 삶이 두렵고 책임지기 싫다. 그러면서도 아이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며 희생자 코스프레를 한다. ‘아빠=돈 버는 기계’ 로 규정하고 사는 남자는 아빠라는 역할 또는 돈 벌어다주는 역할을 제외한 자신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며 살지 않는다.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각종 굴욕감을 견디는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이 행동하는지, 자신의 내면에 어떤 욕망과 불안이 있는지 성찰하지 않는다. 부모의 욕망을 자신의 꿈과 동일시하는 아이들 역시 타자의 욕망에 휘둘려 사는 전형적인 예다. 

 이 책은 육아서라기보다 철학서에 가깝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자신을 성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지은이는 독자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가정을 제외하고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당신의 욕망과 불안의 근원은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심리상담의 공공재화를 꿈꾸며 팟캐스트 ‘공공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 소장은 팟캐스트 내용을 집약적으로 정리하고 살을 붙여 ‘포기하는 용기’라는 열쇳말을 뽑아냈다.  

 무엇을 포기하라는 것일까? 그는 애초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을 통해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주지시킨다. 인간은 태어나서 ‘나’를 인식하기 이전에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인식한다. 따라서 부모의 인정은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원하는 모든 인정의 발원지 또한 부모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짚는다. 문제는 세상이 이러한 인정욕구를 이용해 사람들을 착취한다는 점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은 개인의 결핍을 이용해 착취 구조를 공고히 한다. 따라서 지은이는 그런 사회적 착취 구조에 대한 우리들의 통찰력을 높이고,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과 불안의 근원지를 따져묻자고 말한다.

만약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타자의 욕망이라면 과감하게 포기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인정할 만한 ‘건덕지’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자기만의 성공의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기꺼이 책임지려고 한다면 인생이 훨씬 덜 고통스럽고 편안해질 것이라고 얘기한다.  <한겨레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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