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rPmwW3MDx4

 

P4080498

왜 항상 외출하고 나면 그때야 생각이 나는지

"얘들아, 미안하다. 아빠가 물을 내리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날도 문을 닫고 문짝 옷걸이에 카메라를 건 후 배낭도 벗어 걸려고 하는데

어, 왜 배낭이 없냐?

가만히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그 게 뭐 그리 무겁다고 벤치에다 벗어놓고

서리 내린 겨울풍경을 찍다가 잊고 온 거 였네.

똥도 못 싸고 허겁지겁 왼손엔 삼각대를 오른손엔 카메라를 들고

운길산역 화장실에서 물의 정원 저기 저기 저 벤치까지 ...

 

P3040004

 

고급진 정물화 하나 만들라고

아무래도 삼각대가 필요한데

아무데도 없다, 너 삼각대가!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회상에 잠기니

이틀 전 뚝섬유원지 새벽 출사가 생각났고,

거기에는 세 동의 공용화장실이 있는데

숫자상으로 두 동이 여자 꺼고 한 동이 남자 껀데

내가 남자 변소에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문짝 옷걸이에 카메라와 배낭을 걸고

삼각대는 변기 옆에 세워놓은 게 기적적으로 생각났어.

 

당장 하던 모든, (남들은 휴식, 끝없는 휴식이라 부르는) 일을 중단하고

거기 변소를 찾아갔어. 설마 변소에게 물어보겠냐

변소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에게 물어보겠다는 심사로.

카메라를 여기저기 가리키며 굉장히 바쁜 모드로 남자 화장실 주변을

뜨거운 차 세 잔 먹을 시간만큼 돌아다니다 미화원을 만났어.

 

"저기요. 제가 이틀 전에 새벽에 여기서 똥을 싸고요 ..."

한참 자세히 상황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나타나더니

"자세히 말해봐." 반말로 껴들더라.

정말 기회만 된다면 초현실적 초상화로 찍어보고 싶지만

정교한 대화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그 분에게 최소한 간단하게

"이틀 전 이른 아침에 이 화장실에 삼각대를 놓고 갔네요."

"어, 그거. 경찰이 가져갔어.

누군가 그거 여기다 꺼내놨는데 경찰이 가져갔어!"

"예? 왜 경찰이 가져갔어요? 어디 경찰이래요?"

"몰라. 내가 어떻게 알어. 그냥 가져갔어."

 

P8073120

 

'버튼을 누르시오'라고 인쇄된 버튼을 누르려는데 바로 그 위에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라고 손글씨로 쓴 종이가 붙어 있어서

이게 뭘 어쩌라는 거지 진지한 생활철학 모드로 진입할 순간에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면서, 옛날 그 먼 옛날

새벽 순찰 때 나보고 훔쳐간 라면 내놓으라고 때려죽일 듯 위협하던

그 하사 분만큼 큰 순경이 나타나더니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그래서

"혹시 여기가 뚝섬유원지도 관할하고 있습니까?" 물으니

"뚝섬도 지역에 따라 좀 달라요. 정확히 어디를 말씀하십니까?"

"한강에 인접한 유원지인데요. 거기 화장실 있는 ..."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 내가 이틀 전에 거기 화장실에서 똥을 쌌는데요 ..."라고

육하원칙에 따라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 자세히 설명하는데

"아니, 뭐 때문에 오신 거냐고요?" 단도직입적으로 나온다.

"이틀전 뚝섬유원지 화장실에서 똥 싸고 삼각대 분실!"

 

마침 저녁시간 때라서 그런지 거기 대원들이 다 모여 있는 듯 했댜.

다들 모여서 삼각대의 성능과 예상가격 등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소파에 앉아 있던 고참인 듯한 순경이 싱긋 웃으면서

"아버님, 출입확인서랑 간단한 서류만 작성하시면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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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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