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井)

슬렁슬렁 2018. 12. 13. 13:04

장기를 처음 배운 시기는 아마 국민학교 3, 4학년 때

형이 두 동생을 좌우에 끼고 베니어판 껍데기 같은 걸로 장기판을 만든다 부산한데

합판을 두른 담을 사이에 둔 옆집의 형 친구가 

'장기판으로 쓸 수 있는 판때기가 있는데 줄까' 먼저 제안했다.

형은 판때기를 받아 제법 그럴싸한 장기판을 만들었고 이어 즉시

나에게 장기 말들의 운용법을 가르쳐주었다.

놀이도구라고는 구경은 커녕 개념도 없던 시절에 장기는 새로운 세상이었고

그 안에는 연전연패가 이어지더라도 재미가 쏠쏠한, 만인에 공평한 규칙이 존재했다.


그러던 어느날 형 친구 한 명이 집에 놀러와서 형과 장기를 두게 되었는데

그 싸움의 형세는 미국과 북한 간의 전쟁과 다름 없었더라. 일방적으로 대패하는데

그의 전술은 놀랍고 경이로웠더라. 형과 내 싸움 땐 최고의 장수가 가로 세로 직선을

선점하여 독점하는 차(車)와 바로 눈앞에서 곡선운동이 가능한 마(馬)였다면

그의 주력은 포(包)와 상(象)이었으니, 계곡에서 넘어가고 언덕을 꺽어 달리며 

쾌도난마로 형님 진지를 초토화시키고

궁전 마저 제집 마냥 드나들며 유린하는데 아군은 속수무책이라

이미 기는 꺽여 다시 한 번 해도 그저 패배의 시간을 연장하는데 급급하더라.


"어, 잠깐만..."의 타임 불허, 

단호하고 신속한 손놀림, 

방안에 울려퍼지는 청아한 타격음과 콜, "장군!"

홀연 우리집 안방에 출연하여 장기로 형을 아작낸 그의 존재감은 

나중에 무협지를 읽을 때 갑자기 무림 최고의 비급이나 스승을 만난

주인공들이 느꼈을 기분에 넉넉히 공감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벌어졌다. 일단 상수의 실전 전술을 직접 보고 배우니 내가

문득 형을 이겨버리는 습관이 들게 되었다. 형도 나름 패배의 아픔에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귀한 수업을 받았지만 당신은

아름답고 완벽한, 형적(的)인 승리에 집착하느라 그랬던지

이상하게 그때부터는 내가 더 잘 두게 됐다.

점심 식사를 드시러 집에 들르시던 아버지도 이겨내는 수준이 되자 

집안에 적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쓴 입맛 다시는 소리나

한숨소리만 집안에 낭자했다(는 주관적인 기억)

밤에 이불을 덮고 천장을 보면 

천장에 거대한 장기판이 그려지고 그 위에서 말들은 춤추고. 

아주 나중에, 당시 동생이 어렸다는 게 다행은 아니었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자존심 강한 형은 이를 못 믿어해서 장기를 두었다 하면 이길 때까지 두니

급기야 놀이가 벌칙이 된 나는 요령껏 지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눈치가 9단인 형은 이것조차 용납하지 않았기에

나는 져도 진짜 실력으로 진 것처럼 보여야 하는 심리학도 독학으로 익히다가

6학년이 되어 담임 선생님 댁에서 과외를 할 때는

선생님의 특별 부탁으로 과외 시작 30분 전에 도착해서 대국에 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장기에는 '비기기'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가 처음부터 만방으로 이기고 있더라도 상대의 궁(宮)을 잡지 못하고

상대방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건 비긴 게임이란 것.

집안 전쟁에서는 반드시 승패가 있어야 했지만 밖으로 나오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관행을 배운 것.







비김의 철학에 접하기 전

어느날 늦은 밤에 형으로부터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어떤 식으로 국민학교 5, 6학년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물을 수 없었지만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떤 수가 없었나. 아무 수도 없었나.

그의 장기판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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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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