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작가의 관계항 시리즈 작품들은 사실 별 거 없다

돌덩이 두어 개와 철판 두어 장의 구성이 전부다.

그걸 수많은 버전으로 우리고 진화시켜 

세계의 유명 장소에서 Relatum이란 타이틀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지금은 작가가 관계항이란 이름으로 돌 하나만 놓아두어도

관객들은 그걸 화두 삼아 이우환식 상상의 나래를 펼 지경이다.



맥락에 맞지 않게 가족 간에 날 선 설전이 오갈 때가 

있었다, 있다, 있을 것이다.

왜 갑자기 소릴 지르고 난리냐, 고 조금 더 큰소리로 맞받으면

내가 먼저 안 그랬거든, 이 정형화된 불굴의 답변이다

(그럼, 내가?)

신속히 단기기억력을 되돌려 상황을 복기한 후

선이 이랬고 후가 저랬는데

너 지금 어디서 잘났다고 되레 큰소리냐~! 하고 일갈하면 이제

질문(힐난)이나 부탁(지시)으로 시작된 대화가 감정의 갈등으로 치닫는다.



난 아직도 오리라는

이 관성의 법칙.


자괴감이 하늘을 찌르던 사춘기 시절, 최고의 행복은 잠자리 이불 속에서 듣는 음악방송

마지막 곡으로 Simon & Garfunkel의 Sound of Silence가 나온 날은

'좋은 꿈' 어쩌고저쩌고하는 DJ의 상투적인 마무리 멘트가 사실이 되기도 했지.

'천사의 화음'이라고 칭송 받던 이들의 음악은 오직, 하정우 뺨치게

밥먹기 하나만 잘 했던 아이에게 유일한 정서적 영성체.

시는 읽어야 맛이듯 노래도 불러야 맛이지만 가사도 제대로 몰라

시도 때도 없이 부르던 구절은 '... sound of silence'가 전부였으니

동생도 듣기가 좀 민망해졌나, '왜 거기만 불러?' 아픈 데를 제대로 찔렀지.


큰소리의 발원지는 ★☆가 아님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의 양심이 증거한다 하더라도

發話는 순간 그 말에 실린 억양과 눈빛, 당시의 상황에 따라

★☆가 뱉은 말은 상대에게 뇌성이 될 수 있고 강아지풀도 된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언어를 개발해 온 이래로

옹알이를 시작하는 아기들은 낱개의 명사와 함께

명사, 문장 이면에 있는 눈치코치의 세계를 같이 익힌다.


대놓고 거짓말 하자는 결심이 없다면

가족 간의 대화에서 말이 번드르르할 필요가 있냐?

누가 먼저 큰소리를 질렀는지 따지는 게 소용이 있냐?

그냥

'남은 오리고기는 내가 다 먹었어.'라고 드라이하게 전하면 된다.


수용체에 각인 된 인물 아카이브는 입력정보의 심층적인 의미를 이해하더라

깨어 있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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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람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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