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제주도 여행의 백미였고 최악의 기록이었다.

카메라 리셋과정에서 하루치 그림이 모조리 삭제된 것.

 

월령게스트하우스에서 이른 아침에 도착한 영실에는 우리가 서너 번째 손님이었다.

눈이 제대로 제설되지 않고 쌓인대로 그대로 얼어붙어 있어

제대로 주차할 공간도 없었고, 영실주차장은 아이로부터

내 등산화를 신고 스틱을 챙겼음에도 금년 첫 엉덩방아를 찧어받는 영예를 받았다.

 

영실각 휴게소까지 오르는 차도도 완전히 눈이 덮혀 거기까지 오르는 것도 힘들어 했다.

휴게소에서 난 고기국수, 아이는 떡국을 먹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젠을 사서 서로 한짝씩만 챙겼다.

 

병풍처럼 펼쳐진 병풍바위가 일품이었고 나무계단의 난간과 로프에 쌓여

바람과 함께 얼어붙은 눈의 형상, 저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와 오름들, 새파란 하늘 아래

완전히 눈속에 파묻힌 X-Mas 신의 구상나무 숲,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까마귀들 ...

 

한시간 반 정도 걸려 윗세오름까지 올라와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고 대피소에 들어가니

아이는 컵라면을 폭풍 흡입하고 있었다. 용돈으로 휴게소에서 사 내 배낭에 넣었던

주먹밥을 꺼내주니 그것까지 정말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러다 "아빠도 ..." ㅜㅜ

 

원래의 목표는 아직 1시간을 더 가야 하는 남벽분기점이었는데

녀석은 일언지하에 동행을 거절했다. 아이는 내려가고 홀로 남벽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입구 관리인이 소리쳐 부른다. 스패츠가 없으면 고생을 각오하시라고 친절히 조언한다.

그렇지 않아도 여분의 등산양말이 있었음에도

단단히 조인 등산화 속으로 들어오는 눈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던 차라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다.

 

서울에서의 최초 목표는 당연히 한라산 백록담.

현장에서 아이의 저질 체력을 목도한 후 영실 - 남벽 - 어리목의 7시간 코스로 수정.

산의 풍광이란 게 오를 때 다르고 내려올 때 다르다고 위로하면서

다시 영실 - 남벽 - 영실, 4시간 코스로 결정했는데 말야.

 

시간은 널널하고 힘은 남으니 네비에게 곶자왈을 명했다. 곶자왈이

한두 곳이 아니네! 가까운 <환상숲>으로 정하고 과속단속 카메라들을 요령껏 피하며

30여분을 달리다 <5월의꽃>이라는 흰색의 무인카페를 만났다.

카페 이름과 같은 크기의 '피자'라는 글씨가 더 눈길을 끌었다는 게 맞는 말일 듯.

제주도에서 처음 생긴 무인 카페인데 여기 여행을 왔다가 눌러붙은 한 처녀가

알바를 하면서 가게를 돌보고 있었다. 음식 맛은 그렇다 치고 인테리어부터

운영방식까지 매우 색다른 제주 경험이었다. 이 집 근처로 이런 무인카페가 몇 있었다.

 

아이의 고생을 치하무마할 필요가 간절하여 곶자왈은 과감히 미루고

자기 앱으로 찾은 모슬포항 근처의 PC방으로 안내했다. 물론 중간에

추사 김정호 유배지 기념관에 들른다는 조건을 달아서

 

아이를 PC방에 내려놓고 항구까지 걸으며

마을과 어부들의 몇몇 특별한 상황을 ("작품"이라 읽는다) 담았는데 ...

조업을 끝내고 들어온 배에서 근처 횟집에서 온 운반차량으로

펄펄 살아 몸부림치는 방어를 옮기는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저녁으로 모든 식탁 데코레이션을 생략한 방어회와 지리를 먹었다.

1인당 1만원의 식사. 현지 시장에서만 누리는 특권 아닐까.

전날 7만원씩 주고 먹은 구운갈치 끓인갈치가 너무너무 아까웠다는 ...

 

 

 

Passmore Moshaya의 <분노>

 

 

 

Posted by 바람의 아들